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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My writing/- Graduate School Life

Grad School Life (#08): 실험

by LuMiJUN 2019.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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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생활의 핵심인 실험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학원(혹은 동급 연구소)에서의 실험은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학부생) 때 했던 실험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대학원에서의 실험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실험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학부 때까지의 실험은 대부분 실험 목적이 정해져 있고, 보고자 하는 결과 역시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을 합니다. 즉, '결과가 재현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의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은,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뭔가 새로운 결과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목적을 정해줘서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지도교수님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도 많지만, 지도교수님의 개입 여부는 랩에 따라 천차만별이라서 개입을 안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가정하고 글을 쓰겠습니다.), 본인이 스스로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인 방법(실험)을 계획하고 직접 실행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가는 활동입니다.

- "논문 한 편을 내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하나?"
이에 대한 답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부하고 있는 신경과학 분야를 보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은 실험을 해야 간신히 논문을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제 경험을 들면, "30년 전에는 3개월 정도 patch recording 데이터를 모으면, 논문 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5년 동안 데이터를 모으고, 다양한 분석을 하고, 기도를 해야지 간신히 논문을 낼 수 있다. 내가 자네들보다 먼저 태어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세미나 도중 말씀하신 유명한 교수님도 만나봤고, 10년 동안 진행한 실험/논문이 Nature 실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획기적인 방법을 통해 1~2년 만에 좋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 "실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가 생각하기에 실험을 할 때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얼마나 명확한 질문을 갖고 시작하는가?'입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로 정확히 이해하고 시작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고 주변에 많은 대학원생들이 실험을 하는 모습은 마치 수능 수학 문제를 볼 때 일단 펜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과 같습니다. 아직 외국 연구실에서의 경험이 얼마 없어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제가 한국에서 느낀 바로는, 많은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연구실이 이러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 없이 결과를 바라는 한국의 실험실 모습. 쏟는 에너지에 비해 효율이 매우 낮으며, 나중에 논문을 쓸 때에도 좋은 저널에 투고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1학년 때 정확한 개념 이해 없이 막연히 좋아 보여(또는 다들 실험하니깐, 나도 실험해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한 실험이 3년 차 이상 되어 충분한 이해가 생긴 후, 매우 보잘것없음을 깨달을 수 있는데, 이때 많은 학생들이 슬럼프를 겪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조금 늦게 실험을 시작하더라도 정확한 질문을 갖고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중요한/의미 있는 발견은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던데...?"
맞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위험한 접근 방식인 것 같습니다.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가지고 도박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정확한 실험을 계획 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것은 운이고, 매우 소중한 기회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노리고 무작정 실험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잘 짜인 실험을 보험으로 하고,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야를 갖기를 바랍니다.

- "일주일에 며칠이나 연구실에 나가야 하나요?"
연구 분야나 어떤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연구에 필요한 시간은 천차만별입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많이 하는 경우, 잘 짜여진 코드가 있다면 컴퓨터가 일하는 동안 여유를 즐길 수 있겠죠? Molecular work을 기본으로 하는 experimental biology 분야에서는 "성실한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라고들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 12시간 주 6일은 일해야 남보다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한 교수님이 생각나네요. 생명과는 아직 상당히 많은 부분 노동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실험을 정확히 설계해서 차질 없이 진행하다면 좋겠지만, 항상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 생기기 때문에 재실험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sample 개수) = (필요한 노동력) 이기 때문에, 똑똑하게 실험을 계획해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일단 체력이 약하면 체력부터 기르길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운동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됩니다.

- "그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명확한 목표를 갖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아직까지 잘 모르는 xxxx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고,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xxx들이 필요하며, xxx한 분석 방식을 사용할 것이다. 통계는 xxx를 사용하여 진행할 것이며, 이 실험의 결과는 xxx에 도움이 될 것이다."와 같이 어느 정도 전반적인 개요를 세우고 시작해야 합니다. 목표 이외에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협력"입니다.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실험을 다 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수 있고,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주변에 도움을 받으면 훨씬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로 실험을 돕는 과정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배울 수도 있고, 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력자를 만들 수 도 있습니다. 박사 학위(PhD)를 딴다는 것이 독자적인 실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서로 도와서 일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면 그 방법 또한 적절히 배우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특히, 여러 학문 분야가 융합되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는 다양한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이에 따라 다양한 배경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제 경험을 마지막으로 얘기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2013년 부터 2018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냈습니다. 기숙사/연구실 거리도 10분 채 되지 않았고, 평균 08:00~21:00 / 주 6일 정도는 한 것 같습니다 (안 믿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에 비해 성과는 매우 안 좋았습니다. 실험 4개 정도 손을 댔었던 것 같고 그중 1개. 그것도 아주 간신히 성공(?)해서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봤을 때 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명확한 목표'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비판적인 생각 없이 대충 시작했던 실험들 때문에 시간을 많이 허비한 것 같습니다. '왜 이 실험이 중요한가?' 좋은 저널에 나갈 수 있는가를 정하는 가장 근본적이면서 핵심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시작을 했고, 그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른 것 같습니다. 명확한 질문을 갖고, 적절한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한다면, 제가 했던 것처럼 많은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지 않고도 무난히 좋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며 졸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정확한 실험을 하나 씩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본인 실험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갖고, 명확한 계획이 세워졌을 때 실험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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