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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Books

Sapiens [사피엔스] - 객관적 사실을 바라보는 주관적 시점

by LuMiJUN 2020. 1. 16.

 

Sapiens (Yuval Noah Harari)

초등학생이었을 때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담임 선생님이 잠시 학교에 못 나오게 되셔서 임시로 젊은 선생님이 오셨는데, 그 선생님은 나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기억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부터 한 명씩 나와서 화이트보드에 연필을 그려보렴."  한 명씩 나와서 다양한 연필을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연필, 끝에 지우개가 있는 연필, 육각형 연필 등, 다양한 연필들이 순식간에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웠다. 우리들의 연필 그림이 보드를 가득 채웠을 때, 선생님도 연필을 그렸는데, 선생님의 연필은 다른 연필들과 사뭇 달랐다. 동그란 원 가운데에 점 하나. 우리들이 옆에서 본 연필의 모양을 그렸을 때, 선생님은 정면에서 본 연필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동일한 사물을 다른 방향에서 본다는 것' 어렸던 나에게는 나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Yuval Noah Harari의 Sapiens는 비슷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전혀 의심하고 있지 않던 사실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과연 우리가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정말 사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책에서 근거하고 있는 논문/자료들이 편향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그는 10개의 카드 중에서 빨간색 5개만 뽑아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카드가 빨간색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고, 반대로 파란색만 보여준다면 모든 카드는 파란색이라고 사람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현대 사회에서 남녀의 사회적 위치와 가부장제를 남녀 신체적 조건과 연관시키는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 기독교인의 다양한 믿음(단순한 일신론이 아님). 소비지상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 등 내가 평소에 의심 없이 믿고 있던 것들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글을 풀어가는 방식이 뭔가 'Guns, Germs, and Steel (총, 균, 쇠)' 저자인 Jared Diamond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후에 찾아보니 '총, 균, 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책은 크게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무명의 역사학자가 지필 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인간의 역사를 폭넓게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각 파트 제목 아래에 써 놓은 질문들은 내가 생각하는 각 파트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1. 인지혁명
- 어떻게 '사피엔스' 하나의 종 만 살아남았을까?
2. 농업혁명
- 우리 사회가 현재 갖고 사회의 크기, 그리고 사람/집단 간의 계급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3. 인류의 통합(종교)
- 우리가 거대한 집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4. 과학혁명
- '사피엔스'는 미래에 생존할 수 있을까?

책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자신의 생각을 더해 다양한 색깔로 정리해서 올려놓은 것 같다. 줄거리를 어떻게 정리해서 올려볼까 생각하다가 정말 다양한 리뷰를 읽게 되었고, '줄거리 대신에 리뷰들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들을 보면서 종교(특히 기독교와 신)에 대한 입장,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대한 개개인의 입장 차이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학에 대한 내용이 1/4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비판적인 리뷰들은 신기하게도 제국주의 아니면 종교(2~3장의 내용)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같이 적어 놓은 글은 찾기 힘들었다. 상당수의 비판이 '유발 하라리는 xxx라고 하고 있는데, 이건 잘못된 것 같다.'가 대부분이고, 여기에 책의 내용을 적어 놓았다. 물론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특정 자료/논문들에 근거하고 있어서 포괄적이지 못하고, 틀렸을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본인의 믿음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역사/문화에 대한 비교 분석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추론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신만의 어떤 자료에 근거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피엔스에는 정말 혁신(?)적인 내용(농업혁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 남녀 계급에 대한 문제, 종교에 대한 입장 등)이 많기 때문에 이런 내용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전 세계가 읽는 베스트셀러를 비판하려면 좀 더 근거를 갖고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사람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고, 나는 일반 독자인데 어떻게 내가 그렇게 하나하나 근거를 들어가며 비판을 하냐?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닌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해당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근거/논리 없이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이용해서 여기저기 낙서를 해 놓는 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 글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는데. 특히,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한국의 교육 문화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위험한 행동들이 아닌가 싶다(게다가 '사피엔스'라는 단어만 쳐도 자동완성으로 '사피엔스 요약/줄거리' 등이 나타나는 것을 고려하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와 닿는다.).

정말 가장 객관적인(책의 내용에만 집중하고 있는) 책의 줄거리는 나무위키에 적혀 있는 '사피엔스'를 읽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가능하다면 요약본은 읽는 대신에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책 전체를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옳다/그르다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러한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구나', '어떻게 하면 이러한 통찰력/공감능력을 가질 수 있지?'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유익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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